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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취미/[미술사]

(미술사)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알아야 할 관계도

다음 글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점 양해 바랍니다.

최근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여 수정이 필요한 글이고 아직까지 자료가 많이 부족합니다.

 

주제는 제가 작년 2018년1월 이탈리아 미술사 및 와인 여행을 하기 위하여 

준비하던 자료들이고 자료의 출처는 대부분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혹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혹시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알아야할 관계도

 

 1. 초기 르네상스의 주동자들

-. 브루넬리스키 (건축), 도나텔로 (조각), 마사초 (회화)

참고 작품 : 브루넬리스키 <피렌체 대성당의 돔>

각 분야의 시작을 이들로 부터 잡으시면 될 듯합니다.

 

2. 그 후 연결고리

-.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건축), 로렌초 기브르티 (조각), 프라 안젤리코, 파올로 우첼로 (회화 : 안젤리코는 원급법을 그림을 좀 더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부가적인 요소로 사용한 반면에 파울로 우첼로는 원근법과 단축법 등에 빠져 그림을 좀 더 구조적으로 그리는 데 집중을 하게 된다.)

 

3. 대립구도  

안드레아 만테냐 vs 베노초 고촐리 (안제리코의 제자)

 

안젤리코와 우첼로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회화를 이어나갈 때 대중은 그들보다 좀 더 기존 회화의 세계와 새로운 회화의 세계의 장점을 보여주는 작품에 좀 더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습을 반증하듯 메디치 궁에 있는 개인 예배당의 벽화는 프라 안제리코의 제자임에도 그와 화풍이 굉장히 다른 화가 베노초 고촐리가 그리게 된다. 이 벽화 (베들레헴을 향해 가는 동방 박사들, 1459-63/ 프레스코 벽화)는 성경에 나오는 동방 박사의 일화를 그려 놓았는 데 그에게 이 벽화는 단순히 화려한 의상, 매혹과 환락의 동화 같은 세계를 그릴 수 있는 기회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와 단적으로 대조되는 피렌체 프레스코 작품이 있는 데 그것은 안드레아 만테냐의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성 야고보>이다. /1455년 경 (이 작품은 세계 2차 대전 중 손실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그가 얼마나 이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이게 할 것인가 골몰하였을 지 알게 한다.

 

4. 그림자와 구조의 중요성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회화) // 동시대 (만테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계기가 된 꿈에 관한 일화를 그린 <콘스타티누스 황제의 꿈> - 1460년경  

특징은 단축법으로 그려진 천사와 빛의 처리를 더해 인물의 명암과 그림자가 두드러진다.

마사초의 후계자 중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피에로를 꼽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상적인 단순성과 고요함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5. 회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회화의 퇴보

중세의 화가들은 정확한 소묘의 규칙을 알지 못했다. 이러한 결함이 오히려 자유로운 인물의 배치를 낳을 수 있었다. 하지만 15세기에 접어들며 원근법과 삼각구도 등 회화를 표현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반대로 형식적이고 지루한 그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6. 산드로 보티첼리 (1446~1510) vs 안토니오 폴라이올로 (1432~1498)

두 화가가 대결구도를 이루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두 화가의 목적은 대체로 비슷했을 거이다. 바로 그림의 조화일 것이다. 안토니오 폴라이올로는 그의 그림에 그 시대 회화의 최고의 발견인 원근법과 삼각구도를 이용함으로써 그림의 조화롭게 나타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결로만 놓고 본다면 그것은 어찌보면 맞지 않는 수학 방정식 처럼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의 그림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를 보면 그림 속에 나타난 인물들이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다. 물론 완벽한 대칭을 피하고자 인물들을 정면 그리고 후면을 드러냄으로써 차이를 두려고 하였으나 여전히 어색함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에서 이것들을 포기함으로써 을 통하여 폴아이올로가 이루고자 한 것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2017년 마지막 날과 2018년 첫주를 보낸 피렌체입니다.

 

7. 이와 대비되는 북유럽의 그림들.

이탈리아 미술에 비해서 이상적인 조화와 아름다움을 성취하는 관심을 적게 가졌던 북유럽의 미술은 대신 당시의 광경을 생생하게 그리는 데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8.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프랑스 화가 <장 푸케>와 북유럽의 화가 <에르 반 데르 웨이든>

 

9.  목판화 (양각)의 발견과 동판화 (음각)의 상세함.

 

15세기 중엽에 독일에서는 미래의 미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미술뿐만 아니라 인쇄술의 발명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 대단히 중요한 미술 기법을 발명하는 데 이것은 바로 목판화술이다. 이로 인해 놀이 카드, 그림과 판화 등이 발전하게 된다. 목판화로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단순한 선과 뚜렷한 특징을 들어내게 되어 일련 포스터에 적합한 기술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에 더욱 세부 모습들을 나타내기를 바랬다. 그래서 더 정교한 효과를 내주는 동판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동판화의 경우 뷰린(burin)이라는 특수한 동판용 조각칼을 가지고 동판을 눌러 긁는다.  이렇게 금속판 표면에 새긴 선들 위에 물감이나 인쇄 잉크를 바르면 그 선 속에 그것이 들어가게 되므로 인쇄 잉크를 동판 위에 고루 바르고 난 다음에 동판 표면을 깨끗하게 닦아내기만 하면 된다.

 15세기의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동판화가는 오늘날 알사스 지방인 라인 강 상류의 콜마르 (Colmar)에 살았던 마르틴 숀가우어 (Martin Schongauer : 1453~91)였다. (네덜란드근방)

 

 

 

10.  16세기 초 (500년대 친퀘첸토)

천재들의 향연.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코레조와 조르조네, 북유럽의 뒤러와 홀바인.

 

11.  건축분야 도나토 브라만테 (Donato Bramante : 1444-1514) – 율리우스 2

종교 개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계획.

1506년에 성 베드로 바실리카를 헐어내고 전대 미문의 교회를 세우고자 한 율리우스 2세는 건축가로 브라만테를 선택하게 된다. 브라만테도 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거대한 십자형 홀을 중심으로 한 성당을 건립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패하고 만다. 그 이유는 이 건축 계획을 위한 자금이 막대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돈을 충당하기 위해 교황은 면죄부를 판매하게 되고 독일의 루터로 하여금 최초의 공개 항의를 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성 베드로 대성당은 그 거대한 규모를 제외하고는 원래의 계획과 일치되는 것이 없게 되었다.  

 

12.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탄생 (1452-1519)

그는 피렌체에서 화가이며 조각가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Andrea del Verrocchio : 1435~88)가 경영하는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

일화 : 베로키오의 명성은 당시 유명하여 베네치아 시가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장군의 기념물 제작을 의뢰하게 된다. 베로키오가 만든 이 기마상은 그가 도나텔로의 전통을 이어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조각상 정보 :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기념상> 1479베네치아 산조반니에 파올로 광장.

 

이탈리아의 골목은 언제나 더러우면서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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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작성된 목록은 여기까지 입니다.

가능하다면 다음에는 사진목록까지 포함해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것은 회화이다 보니 건축과 조각의 자료는 거의 수집하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언젠간 흥미 생기면 추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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